얼굴은 알았다. 이름은 몰랐다.
얼굴만 익숙한 사람들
1월 한 달은 본가에서 일했다. 그래서 회의는 전부 온라인이었다. 디스코드로 모이고, 카톡으로 이야기하고, 계속 존댓말을 썼다.
화면 속 얼굴은 금방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름은 끝까지 잘 붙지 않았다.
한 달 내내 그랬는데도 별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들 화면 안에 있었으니까.
(이게 나중에 이렇게 될 줄은…◞ ‸ ◟)
2월, 방탈출 모집 공고가 떴다
2월에 오프라인 회의가 잡혔다. 한 달 만에 실제로 얼굴을 보는 자리였다.
그런데 회의 전에 카톡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혜림이었다.
혹시 4시에 강남에서 방탈출하고 가려고 하는데 시간 되시는 분 있으신가용??
회의 전에 방탈출을 하고, 그대로 회의로 간다는 계획이었다.
나는 ENTJ다. 그것도 파워 E다. 그리고 방탈출 러버다.
(파워 E는 초면을 가리지 않습니다.)
테마는 판타스트릭 강남 2호점, 「사자의 서: 북 오브 두아트」.
한 달 내내 화면으로만 보던 사람들이었다. - 참고로 프로필 없어서 얼굴 모름
고민한 시간은 없었다. (0.5초 컷)
거기서 이름을 잘못 불렀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을 회의실이 아니라 방탈출 방에서 다시 만났다.
방탈출은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여기 좀 보라고, 이거 맞는 것 같다고, 계속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한 달 동안 화면 이름표만 보고 있다가, 처음으로 이름을 소리 내서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이름을 바꿔 불렀다.
상희를 보면서.
"혜림님이시죠?"
혜림을 보면서.
"상희님 맞죠?"
(당당하게)
정확히 반대로 불렀다.
아무도 고쳐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게 몇 달을 갔다. (ㅇㅁㅇ)
🕵️ 몇 달 뒤, 해커톤에서 걸렸다
계기는 엉뚱한 데서 왔다. 해커톤에서 본 사람(상희가 해커톤을 했었음)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걔는 혜림이잖아 (상희를 가르키며) 라고 확신하듯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상희라고."
머릿속이 잠깐 멈췄다. 뭔 소리지 싶었다.
그래서 자기소개 페이지를 열고, 인스타그램까지 들어가서 확인했다.
.
…
…..
..……..!?
알게 됐다.
(나 속았구나 여태껏.)
🚨 여러분, 왜 저 속이셨죠
밤 10시 42분에 단톡방을 열었다.
여러분왜저속이셨죠드디어진실을알았씁니다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었다.
상희는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죠?" 사과보다 수사가 먼저 나오는 게 이 팀이다.
혜림은 미안하다고 하더니 곧바로 덧붙였다.
웃참하느라 힘들었어여
지희는 개웃긴다고 하면서, 일단 자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제일 먼저 발 뺀 사람)
즉, 다들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웃음을 참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건 이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내가 이름을 틀리게 부를 때마다 다들 알고 있었고, 아무도 고쳐주지 않았고, 각자 어딘가에서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달 동안. (ㅠ_ㅠ ) 🤬
😩 그래서 지금은
이름은 이제 제대로 안다. 확인까지 했으니 틀릴 일도 없다.
지난 편에서 나는 첫인상이 무서웠다는 말을 들었다고 썼다. 코트 입은 덩치 큰 놈이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고.
그날 나를 경계하던 사람들이, 몇 달 동안 이런 걸 숨기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한 걸음 더 친해진 거겠지..?
방탈출은 그날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성공했다고 해주세요..젭알….!!!)
대신 이름 두 개를 바꿔 부른 것만 몇 달째 남았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